9살 효자 정재수

연일정씨홈페이지 www.yuniljung.com

자 정재수(鄭在洙)군은 경북 상주시 화서면 사산초등학교 2학년 1974년 1월 22일 아버지 정태희 씨와 함께 소곡리의 집에서 약 12km 떨어진 충북 옥천군 청산면 법화리 큰댁으로 설을 지내기 위해 길을 나섰다.
큰집으로 가려면 보은군 마로면의 험준한 고갯길인 마루목재를 건너야 했는데 당시 이 고갯길에는 이틀 전부터 폭설이내려 33cm 가량 쌓였고, 기온도 영하 20℃까지 급강하 했다. 다음날 사람들은 고갯길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부자가 동사한 채로 땅에 움츠리고 누웠는데 아버지의 몸에는 아이의 외투가 덮여 있었고, 아이는 아버지를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술기운이 있었던 아버지가 눈길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자 아이가 옷을 덮어 주고 몸을 일으키려 애를 쓰다 지쳐 잠들어 결국 동사하고 말았다. 이 눈물겨운 이야기는 당시 여러 신문기사에 실려 전국으로 알려져 후에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실렸고,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정 군이 목숨을 잃은 고갯길 마루목재엔 묘가 만들어졌고, 1974년 묘 옆으로 정재수 효행비 까지 세워졌다.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정재수군의 효행이 점점 잊혀지자 지역의 뜻 있는 사람이 ‘효자정재수기념사업회’를 구성, 1993년 3월 폐교가 된 정재수군 모교에 기념관을 마련하게 됐다. 정군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 진 정 군의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되고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실릴 만큼 전 국민적 관심이 모아져 서울어린이대공원 등 전국 각지에서 정 군의 동상이 세워지는 등 정군은 효행의 본보기가 됐다. 하지만 지난 1994년 정군이 다니던 상주 사산초등학교가 폐교되고 도덕교과서에서도 정군의 이야기가 사라지면서 차츰 정군은 잊혀 지는듯 했다.
그러다 지난 2001년 건립된 정재수기념관은 정군의 효행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정재수 기념사업준비위원회와 상주시가 총 사업비 10억여원을 들여 폐교에 기념관을 건립, 전국 최초로 효를 주제로 한 기념관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각지에서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립 10여년이 지난 정재수기념관은 방문객이 크게 줄었다. 방문객이 크게 준 원인은 기념관이 상주 시내에서 30㎞, 가장 가까운 고속도로 화서 나들목에서도 20㎞ 떨어져 있는 데다 최근 효 의식이 갈수록 옅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돼 씁쓸하다.
<최해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