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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성(鄭泰成)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직업 : 전 국회의원 ▣연대 : 전 국회의원. ◐정치근(鄭致根)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직업 : 전 장관 ▣연대 : 전 법무부장관. ◐정재철(鄭在哲)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직업 : 전 국회의원 ▣연대 : 전 국회의원. ◐정창화(鄭昌和)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知奏事公派 29代孫 ▣직업 : 전 국회의원 ▣연대 : 전 국회의원. ◐정호근(鄭好近)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직업 : 전 국회의원 ▣연대 : 전 국회의원. ◐정운근(鄭雲近)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監務公派 23代孫 ▣직업 : 전 국회의원 ▣연대 : 전 국회의원. 전 국회사무차장 ◐정운갑(鄭雲甲)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監務公派 23代孫 ▣직업 : 전 국회의원 ▣연대 : 전 국회의원. 전 농림부장관 ◐정소영(鄭韶永)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知奏事公派 28代孫 ▣직업 : 전 장관 ▣연대 : 전 농수산부 장관. ◐정무식(鄭茂植)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직업 : 전 국회의원 ▣연대 : 전 국회의원. ◐정구중(鄭求中)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직업 : 전 국회의원 ▣연대 : 전 국회의원. ◐정종택(鄭宗澤)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監務公派 24代孫 ▣직업 : 전 국회의원 ▣연대 : 전 국회의원. 전 농수산부장관 ◐정희택(鄭喜澤)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監務公派 24代孫 ▣직업 : 전 감사원장 ▣연대 : 전 국회의원. 전 대검검사. 전 감사원장 ◐정남택(鄭南澤)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監務公派 24代孫 ▣직업 : 전 국회의원 ▣연대 : 전 국회의원. ◐정광채(鄭光采)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연대 : 자는 상보. 조선 정조(正祖) 때의 사람으로 자(字)는 상보이며 설곡 정보의 후손(後孫)이다. 정조(正祖) 때에 사마(司馬)로 용인에 있다가 충주(忠州)에 와서 살았다. ◐정광후(鄭光厚)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工曹判書 ▣연대 : 고려 충혜왕 1344년~? 高麗朝 文科, 嘉善大夫 尙州牧使, 가문을 보전하기 위하여 近世朝鮮朝에 工曹判書를 하셨다. 墓所 : 영천시 북안면 원당리. 墓碑가 있고 묘소아래 元堂齋가 있음. ◐정문계(鄭文繼)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知奏事公派 10대손, 文繼公파의 始祖 ▣벼슬 : ▣연대 : 知奏事公派 8개파중 제3파 文繼公파의 始祖. ◐정문계(鄭文啓)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병조참의, 여주목사 ▣연대 : 1740(영조 16)∼1781(정조 5)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욱재(郁哉).대사간 상인(象仁)의 아들이다. 1762년(영조 38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된 뒤 음보(蔭補)로 관직에 진출, 참봉, 주부 등을 지냈다. 1775년 숭정전(崇政殿)에서 베풀어진 태학제술시(太學製述試)에 선발된 뒤 그해 시행된 구현과(求賢科)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승지, 병조참의를 역임하고 여주목사로 있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保晩齋集.(趙湲來) ◐정문비(鄭文備)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知奏事公派 10대손, 司正公파의 始祖 ▣벼슬 : ▣연대 : 知奏事公派 8개파중 제5파 司正公파의 始祖. ◐정문손(鄭文孫)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知奏事公派 10대손, 文孫公파의 始祖 ▣벼슬 : ▣연대 : 知奏事公派 8개파중 제4파 文孫公파의 始祖. ◐정문예(鄭文裔)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知奏事公派 10代孫, 生員公派의 始祖 ▣벼슬 : 생원(生員) ▣연대 : 知奏事公派 8개파중 제2파 生員公파의 始祖. 1402年(近世朝鮮 太宗 2年)에 生員하여 靈山儒學敎導를 지냄. 子·孫 兩代에 8及第가 났음. 墓所 : 永川 嗚山里 三歸洞(영천시 오미동 삼귀). 墓所 아래 三歸齋가 있음. 생원(生員)이란? 조선시대에 소과(小科)인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 조선 후기에는 나이 많은 선비에 대한 존칭어로 성씨에 붙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1109년(고려 예종 4) 승보시(陞補試)가 설치되면서 생원이 배출된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의 생원은 진사(進士)와 더불어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었으며, 다시 문과(文科)에 응시, 합격하면 관직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성균관에 들어가지 않고 참봉·훈도·오위장 등 종9품직에 제수되는 경우도 있었다. 식년시(式年試)와 증광시(增廣試)의 소과에서 각각 100명을 뽑았으며, 조선시대에 배출된 생원수는 2만 4000여명이나 되었다. 군역이나 잡역이 면제되었으며, 향촌사회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로 군림하였다. 생원과 진사와의 관계는 법제적으로 우열이 없으나, 조선 초기에는 생원이 진사보다 우대받았다. 후기에 경학(經學)보다 사장(詞章)을 중시하게 되자, 생원의 사회적 존경도는 진사보다 낮아졌다. 《매천야록(梅泉野錄)》에 의하면,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들도 진사라 칭하여 기록한 사례가 있다. ◐정문욱(鄭文彧)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知奏事公派 10代孫, 正郞公派의 始祖 ▣벼슬 : ▣연대 : 知奏事公派 8개파중 제6파 正郞公파의 始祖. ◐정방(鄭枋)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병조 참판 ▣연대 : 1707~? 자(字)는 계직(季直). 영조(英祖)29년(1753년) 식년시(式年試) 병과4(丙科4)에 합격하였다. 부(父) 정민하(鄭敏河), 조부(祖父) 정흡(鄭※), 증조부(曾祖父) 정광연(鄭光演) [참고문헌] 국조 문과 방목 ◐정숙(鄭潚)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기묘명현(己卯名賢) 정완(鄭浣)의 아들. 절효(節孝)로 명망을 떨쳤는데, 특히 친구 성수종(成守琮)이 죽자 과부가 된 그의 처를 평생 동안 먹여 살려 우애의 본보기로 선비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정순제(鄭順濟)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知奏事公派 19代孫, 포은공파 9대손, 별좌공파 6대손 ▣직업 : ▣연대 : 1722∼1792 1760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22세 많은 같은 항렬의 정지익(鄭志翼)과 함께 영일정씨 족보인 "갑오세보"를 공동집필하였다. [참고문헌] 논문(정의천) ◐정신석(鄭臣碩)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사간원 헌납 ▣연대 : ?∼? 조선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사간원헌납을 지낼 때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막내숙부 효전이 화를 당하니 이에 연좌되어 남해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정여원(鄭驪源)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제주목사(濟州牧師) ▣연대 : 정조20∼? 사과 정희주의 장자. 자는 성도(聖圖). 정조 20년에 출생하여 무과에 급제하여 제주목사(濟州牧師)를 지냈다. 아들 정운익(鄭雲翼)이 병사(兵使)로 유공하여 정여원에게 가선대부 판병조참판(嘉善大夫判兵曺參判)에 추증되었다. ◐정영택(鄭永澤)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직업 : 독립투사 ▣연대 : 1873(고종 10)∼1947 자는 안립(安立), 호는 원경(原敬). 한말에 진성(晋成)전문학교 교장을 지냈다. 1910년 경술국치후 중국에 망명하여 독립투사로 활약하였다. ◐정원달(鄭遠達)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監務公派 20代孫, 貞肅公派 13대손, 판결공파 12대손 ▣벼슬 : 가선대부 이조참판 우의정 정우량의 장남. 자는 원장(元帳) 영종 11년에 출생하여 영조 32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가선대부 이조참판(嘉善大夫 吏曹參判)을 지냈다. ◐정원필(鄭遠弼)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知奏事公派 23대손, 포은공파 23대손, 도촌공파 8대손 ▣직업 : 현감 ▣연대 : 1810∼1872 1860년 3월부터 1863년 7월까지 만 3년 동안 전라도 동복(同福)현감을 역임하였으며 그 다음 근무지가 譜所가 있던 영천이었다. 즉 "을축이정보"가 나오기 직전에 영천군수로 자리를 옮기고 할아버지뻘 되는 정문승에게 족보편찬을 의뢰했다. 그리고 이 족보는 발문이 두개인데 그 중 하나를 정원필이 썼다. [참고문헌] 논문(정의천) ◐정유(鄭裕) ▣항렬 : ▣벼슬 : 순조(純祖) 때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를 지냄 ◐정이교(鄭以僑)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지주사공파 12대손, 생원공파 2대손 ▣벼슬 : 弘文館 校理 ▣연대 : ?~1498년 字는 子美이며 號는 晩翠堂. 1468년에 進士, 1470년에 別試文科하여 吏曹佐郞을 하다가 1486년에 重試文科하여 通政大夫 司憲府掌令(정4품), 歷銓郞, 翰林, 弘文館校理 등 역임. 戊午士禍에 연루되어 함경남도 함흥으로 귀양가서 그곳에서 돌아가시고 그 후손들은 지금의 김천시 봉산면 신리 봉계마을에 입향했다. 묘소: 경북 김천시 봉산면 태화동 太和山 ◐정일겸(鄭日謙)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監務公派 21代孫, 貞肅公派 14대손, 판결공파 13대손 ▣벼슬 : 도승지(都承旨) ▣연대 : ?∼? 정석달의 아들이고, 자는 자익(子益)이다. 정조 원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과 도승지(都承旨)를 지냈다. 아우 정후겸(鄭厚謙)은 예조참판을 지냈다. ◐정자(鄭滋)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이조정랑 ▣연대 : 1515(중종 10)~1547(명종2) 조선의 문신. 자는 민고(敏古), 호는 청사(淸莎). 판관 유침의 아들. 우의정 철의 형. 1540년(중종 35) 진사로써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1544년 정언(正言)이 되고, 1545년(명종 즉위) 이조정랑으로 을사사화때 대윤인 윤임의 처남이라 하여 소윤에 의해 광양(光陽)에 안치(安置),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에 다시 죄가 가중되어 경원(慶源)으로 이배(移配)되던 도중에 죽었다. 선조때 신원(伸寃)되었다. ◐정자숙(鄭子淑)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의금부판사 ▣연대 : 조선 때 김제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증손인 송강 정철의 추은(推恩)으로 이조판서 및 지의정부사에 추증되었다. ◐정자여(鄭子與)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장기鄭씨의 始祖 ▣벼슬 : ▣연대 : 延日鄭씨에서 분가한 장기鄭씨의 始祖. ◐정자제(鄭子濟)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의금부판사 ▣연대 : 시호는 위양(威襄). 조선 때 전주부윤에 이르렀으며 숭록대부, 의정부 우찬성 및 의금부 판사에 추증되었다. ◐정자피(鄭子皮)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良肅公파의 始祖 ▣벼슬 : ▣연대 : 延日鄭씨의 3개파중 제3파 良肅公파의 始祖. ◐정존(鄭;存)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참봉, 현감 ▣연대 : 1659(효종 10)∼1724(정종 4) 조선의 문신. 자는 장원(長源), 호는 첨의당(瞻依堂). 송강 정철의 현손. 외숙 민정중(閔鼎重)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1684년(숙종 10)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문과를 단념, 송시열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송시열이 유배당하자 유배지까지 따라가 모셨으며 1696년(숙종 22) 장녕전참봉(長寧殿參奉)이 되고 이어 동몽교관(童蒙敎官), 영춘현감, 공조정랑을 거쳐 금천현감(衿川縣監)에 이르렀다. ◐정종은(鄭宗殷)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간의대부 신라때의 諫官이며 태종 무열왕때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냈고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에 공을 세웠지만 그 뒤 왕께 간언(諫言)한 것이 화가 되어 인동(仁同)의 약목현(若木縣)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여생을 바쳤다. ◐정진(鄭鎭)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監務公派 7代孫, 靖元公派 派祖 ▣직업 : 공조판서, 오천부원군 ▣연대 : 1378(우왕 4)∼1418(태종 18) 시호는 정원(靖元). 무과에 급제한 후 자헌대부, 숭록대부에 책록되었으며 공조판서를 역임하였고, 오천부원군에 봉해 졌다. ◐정축(鄭潚)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사헌부감찰, 돈녕부부정 ▣연대 : 1491(성종 22)∼1573(선조 6) 조선 중기의 문신. 이조정랑 완(浣)의 아들이다. 1528년(중종 23) 진사가 되고, 1531년 음서로서 참봉을 지냈다. 그뒤 광흥창부봉사(廣興倉副奉事), 의금부도사, 사온서직장(司◎署直長), 주부, 사헌부감찰, 군자감판관을 두루 거쳐, 돈녕부부정에 이르렀다. 1573년(선조 6) 83세로 통정(通政)의 계(階)를 하사받았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宣祖實錄, 國朝人物考.(孫承喆) ◐정충량(鄭◎良)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監務公派 19代孫, 貞肅公派 12대손, 판결공파 11대손 ▣벼슬 : 통덕랑(通德郞) ▣연대 : ?∼1812(순조 12) 정충량은 정수기의 삼자다. 우의정 정우량·좌의정 정휘량의 아우이며 자는 사운(士雲)이다. 그의 벼슬은 통덕랑(通德郞)을 지내고 순조 12년(1812) 12월에 71세로 사망하였다. ◐정해복(鄭海復)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직업 : 은행가 ▣연대 : 1858(철종 9)∼1940 초명은 재학(在學). 자는 교선(校先), 호는 우곡(又谷). 한말 상주군수를 지낼때 국운이 쇠퇴하고 친일풍조가 거세게 파급될 무렵, 나라의 경제적 기반을 세우고자 합동은행(合同銀行)을 설립하였다. ◐정형지(鄭亨之)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知奏事公派 10대손 ▣벼슬 : 만호(萬戶) ▣연대 : 知奏事公派 8개파중 제7파 萬戶公파의 始祖. 만호(萬戶)란? 고려와 조선시대 무관직의 하나. 만호는 본래 그가 통솔하여 다스리는 민호(民戶)의 수에 따라 만호·천호·백호 등으로 불렸으나, 차차 민호의 수와 관계없이 진장(鎭將)의 품계와 직책 등으로 변하였다. 이것은 원나라의 제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육군보다는 수군에 이 명칭이 남아 있었다. 고려 충렬왕 때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에 도만호(都萬戶), 만호, 부만호(副萬戶) 등의 관직을 두었고, 조선 초기에는 만호에게 외침방어의 임무를 주었다. 초기의 만호는 3품관이었으며 부만호는 4품관이었다. 만호의 임기는 900일이었으며, 대개 무예를 시험하여 임명하되, 무과합격자나 겸사복(兼司僕)·내금위(內禁衛)는 시험과 관계없이 임명되었다. ◐정홍(鄭洪)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보문각(寶文閣)의 대제학 ▣연대 : ?∼1420(세종 2)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아버지는 고려 대제학 사도(思道)이며, 어머니는 고려 예문관직제학 정포(鄭◎)의 딸이다. 1377년(우왕 3) 제릉서영(諸陵署令)이 되고, 그해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조선시대에 판중추부사,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가 되고, 이어서 보문각(寶文閣)의 대제학이 되었다.최종관직에 관하여 "국조황각록(國朝黃閣錄)"에는 우상이라 기록되어 있으나 공인되지 않고 있다.시호는 공간(恭簡)이다. [참고문헌] 定宗實錄, 太宗實錄, 迎日鄭氏族譜.(李在範) ◐정황(鄭煌)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자헌대부 ▣연대 : ?∼? 자(字)는 숙함(叔涵). 조선 명종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음보로 군기사첨정(軍器寺僉正)을 지낸 후 내섬시부정에 올랐으며 광국원종공신에 책록되었고, 후에 아들 승명(升溟)이 공을 많이 세워 자헌대부, 병조판사(判事)에 추증되었다. ◐정효강(鄭孝康)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監務公派 8代孫, 靖元公派 1代孫 ▣벼슬 : 형조참의 ▣연대 : ?∼? 오천부원군 판서 진(鎭)의 세째아들이다. 조선 때 지병조사(知兵曹事)를 거쳐 1453년(단종 1)에 형조참의에 올랐으나 1454년(단종 2) 계유정란이 일어나자 막내동생 효전(孝全)과 안평대군에 부자가 보성관(寶城官)의 노비가 되었다가 1454년(단종 2) 부자는 교수형에 처해졌고, 처자는 노비가 되었다. ◐정효손(鄭孝孫)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監務公派 8代孫, 靖元公派 1代孫 ▣연대 : ?∼? 오천부원군 판서 진(鎭)의 큰아들이다. 조선 단종때 계유정란으로 1454년(단종 2) 막내동생인 효전(孝全)이 화를 당하자 이에 연좌되어 장남 유석(維碩)은 거제에 유배되었다 죽음을 당했고, 차남 신석(臣碩)은 남해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정효순(鄭孝順)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監務公派 8代孫, 靖元公派 1代孫 ▣연대 : ?∼? 오천부원군 판서 진(鎭)의 둘째아들이다. 조선 단종때 계유정란으로 1454년(단종 2) 막내동생인 효전(孝全)이 화를 당하자 이에 연좌되어 진도에 유배되었다 풀려났으며, 차남 석례(錫禮)는 첨지를 지냈는데 이 사건에 연좌되어 가산을 몰수당했다. ◐정희손(鄭希孫)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知奏事公派 10대손, 都事公派 始祖 ▣벼슬 : 도사(都事) ▣연대 : 知奏事公派 8개파중 제8파 都事公파의 始祖. 도사(都事)란? 고려 때 종 7품의 관직, 조선 때 관리의 감찰을 담당한 종 5품 관리. ⊙정희주(鄭曦柱) ▣항렬 : 延日(迎日,烏川)鄭氏 ▣벼슬 :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通政大夫 承政院 左承旨) 정희주는 정준달의 아들이고, 정충달의 양자이며, 자는 원명(元明)이다. 영조 44년에 출생하고 무과에 급제하여 사과(司果)직을 지냈고, 손자 정운익(鄭雲翼)이 북병사통제관으로 공을 세워 그에게도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通政大夫 承政院 左承旨)에 추증되었다. 그는 정조 24년에 사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