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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배출해낸 가장 위대한 여행가”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14세기 이슬람의 법률가 이븐 바투타(1304∼1368)의 여행기가 정수일(67) 전 단국대 사학과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이 책의 본디 아랍어 제목을 직역하면 ‘여러 지방과 여로의 기사이적을 본 자의 진귀한 기록’이지만, 일반적으로 <이븐 바투타 여행기>라 알려져 있기 때문에 옮긴이는 이를 제목으로 삼았다.이븐 바투타의 본명은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븐 압둘라 븐 무함마드 븐 이브라힘 알 라와티’다. 모로코 왕국 서북단의 국제무역항 탄자에서 태어난 그의 삶에 대해서는, 스물여섯 살에 집을 나서 이후 30년 동안 아시아·유럽·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쳐 10만㎞의 여정을 바람처럼 떠돌았다는 사실 이외에 더 알려진 바가 없다. 이븐 바투타는 당시의 교통수단으로 한 사람이 평생 다닐 수 있는 물리적 거리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여행기가 위대한 것은 이런 물리적 거리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천성적으로 방랑벽을 타고났을 뿐 아니라,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가능한 한 가장 구체적인 표현으로 기록에 남기는 꼼꼼한 기록광이기도 했다. 서방세계가 애써 외면한 기록 그의 여행기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더불어 중세 동서교류사에 관한 가장 중요한 자료다. 그러나 마르코 폴로의 저작은 판본이 140종에 이르고 내용 또한 자신이 직접 체험한 기록이라기보다 전해들은 이야기를 잡다하게 모아놓은 것인 데 반해, 이븐 바투타의 것은 자신이 직접 여행하면서 관찰하고 체험한 내용을 실록한 것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월등하다. 그럼에도 서방 세계에서는 ‘이슬람’의 시각에서 본 동서교류사라는 점에서 이 저작을 애써 외면해왔다. 이븐 바투타가 태어난 모로코 왕국은 당시 아시아·아프리카·유럽 세 대륙에 걸쳐 있던 이슬람 세계의 서쪽 끝에 자리했다. 어려서부터 철저한 이슬람 교육을 받아 독실한 무슬림(이슬람교 신도)으로 성장한 그는 21살 때 무슬림의 5대 종교적 의무 가운데 하나인 성지순례에 나서면서, 어렴풋이 ‘길떠남’이 그의 운명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음을 느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난 수행자 이맘 부르한이 여행을 좋아하는 그에게 “인도와 중국에 있는 나의 세 형제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을 했을 때, 이븐 바투타의 역마살 낀 상상력은 그 순간 인도와 중국 같은 머나먼 이역 또한 자신의 여로에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그는 계시를 실천에 옮기기라도 하듯 실제로 인도와 중국땅을 밟았으며,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이맘 부르한의 세 형제를 모두 만나 그가 부탁받은 안부를 전했다. 이 위대한 방랑객은 인도에서 8년 동안 머물며 그곳의 법관을 지냈고, 인도 술탄의 특사로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순제 치하의 중국 베이징을 여행할 수 있었다. 그의 여행은 모로코의 탄자를 출발해 이집트-서아시아-중앙아시아-인도-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의 한발리크(베이징)까지 다녀온 ‘동행’, 모로코의 수도 파스를 출발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조의 수도 가르나투아(그라나다)까지 갔다가 모로코 남부 마라케시를 돌아 파스로 귀환한 ‘북행’, 파스에서 다시 남하해 사하라 사막을 횡단한 뒤 수단 등 내륙 아프리카까지 왕복여행한 ‘남행’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그의 여행기는 당대의 수많은 실존 인물들을 정확히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작은 역사인물 사전이며, 이질적인 여러 문명세계를 관통하면서 풍부한 정보를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그 자체가 일종의 정신문명 교류의 표상이자 촉진제”가 되었다고 옮긴이는 평한다. 정보전달의 정확성으로 보나 수사학적 완성도로 보나 “여행문학의 좌표를 세운 수작”이란 평가 또한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문학어 맛 살린 철저한 완역 옮긴이는 이 불가사의한 여행기를 번역하면서 “완역의 최대치를 도모”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문학어’인 중세 아랍어 특유의 맛과 운율을 살리기 위해 필요에 따라선 낯선 한자어를 섞어썼으며, “일언반구의 빠뜨림”도 없는 완역을 기하기 위해 일쑤 다른 초역본에서는 생략하기 마련인 아랍어의 상투적 문구들(“인샬라” 따위)조차 그대로 옮겼다. 여기에 이 고문서를 현대인이 읽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1천여 항목에 이르는 고유명사·문물 등에 관한 옮긴이의 풀이를 덧붙였다. 특히 이슬람세계의 생각과 마음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항목은 매우 토착적인 설명을 더해 우리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가령 ‘알라신께서 원하신다면’이란 뜻의 ‘인샬라’란 말에 대해 “‘진인사하고 대천명한다’고 할 때의 ‘대천명’과 비슷하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또 이븐 바투타의 행적을 25장의 세부 지도로 그려 해당 장의 앞에 싣고, 그의 전체 행로를 나타내는 지도와 이를 마르코 폴로의 그것과 비교한 지도 두 장을 책 끄트머리에 덧붙였다. 이 지도들은 그가 감옥에 갇혔을 당시 지급받은 ‘관지’(감옥용 휴지) 열두 조각을 풀로 붙여 그 위에 빨강색과 파랑색 볼펜으로 정밀하게 그린 것이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한동안 잊혀졌다가 1808년 알제리에서 아랍 탐험가 시첸에 의해 처음으로 필사본이 발견됐다. 1829년 영국의 새뮤얼 리가 초역본을 냈고, 1858년 프랑스의 데프레메리와 상귀네티가 처음으로 완역하여 파리에서 출간했다. 이후 영어(H.A.R.깁 옮김, 1929), 일어(마에지마 신지 옮김, 1953), 중국어(마진펑 옮김, 1985) 등 세계 15개 국어로 번역됐으나 모두 간추린 번역에 그쳤고, 완역은 프랑스어 번역 이후 정수일씨의 작업이 두 번째다. 옮긴이는 ‘옮긴이 서문’에서 “이제 우리는 번역 분야에서도 남들과 눈높이를 견주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에 새삼 가슴벅차다”는 말로, 이 방대한 작업에 대한 자부심의 한 귀퉁이를 드러내고 있다. [2001년 9월22일 한겨레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