圃隱集 第1券 [025]
四月十四日淮陰水驛登舟
經春困鞍馬 (경춘곤안마)
今日喜登舟 (금일회등주)
旣有床褥穩 (기유상욕은)
又無風浪憂 (우무풍랑우)
淡烟橫柳驛 (담연횡류역)
細雨濕芳洲 (세우습방주)
向晩棹歌發 (향만도가발)
忽生千里愁 (홀생천리수)
4월 14일에 회음수역에서 배에 오르며
봄을 보내며 말 타느라 고달프다가
오늘은 기쁘게도 배에 오른다
평안히 눌 자리가 있는데다가
풍랑의 걱정마저 없어졌구나
버들 우거진 역마을엔 옅은 안개가 끼고
가랑비는 꽃다운 모래톱을 적셔준다
저물녘에 울리는 뱃노래 소리에
천리 길의 시름이 갑자기 일어난다
[註釋]
회음수역: 현재 중국 강소성江蘇省 북부의 회안시淮安市에 있는 역 이름이다. 이곳은 한漢나라 한신韓信의 고향으로 그가 ‘회음후淮陰侯’로 봉해졌던 곳이기도 하며 서유기西遊記 의 작가 오승은吳承恩과 주은래周恩來의 고향이기도 한 유서 깊은 곳이
다
[해설]
고려시대의 대 중국 사행로는 시기에 따라 몇 가지가 있는데, 정몽주는 개경을 출발, 평안도 의주를 거쳐 요양遼陽을 지나 요동반도 여순旅順에서 배를 타고 산동반도 등주登州(지금의 산동성 봉래시蓬萊市)에 상륙하여 남경南京으로 들어가는 여정旅程이었다. 위의 인용시는 산동반도에 상륙하여 육로를 통해 남경으로 가는 과정 중 강소성의 회음淮陰을 지나며 쓴 것이다.
포은이 중국에 사행을 떠난 것은 모두 6차례인데, 실제로 입국을 하여 사행의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것은 그 중 3차례였다. 떠난 날짜를 고려해 볼 때, 4월 14일에 쓴 인용시의 사행은 1386년 2월에 출발한 사행이 유력해 보인다.
1-2구에서는 사행을 떠나 말을 타고 돌아다녀야 하는 고통을 서술하고 있다. 이곳 저곳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봄이 다 가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의 행차는 배를 타고 가는 여정이라는 점이다. 배는 말보다 훨씬 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평안히 눌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시의 후반부인 경련頸聯과 미련尾聯은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목격한 아름다운 봄 경치이자 그 경치로 인한 수심愁心이다. 이른바 ‘선경후정先景後情’인데, 전형적인 당시의 기법이다.
역마을엔 버들이 우거져 있고, 엷은 저녁안개가 가득하다. 때마침 보슬비가 내려 온 대지를 적셔준다. 마을의 전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독자는 자기도 모르게 어느덧 동양화의 화폭 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5-6구가 ‘선경후정’의 ‘경’이라면, 7-8구는 ‘정’이 된다. 저물 무렵 어디선가 뱃노래 소리[도가棹歌]가 들려온다.
위의 인용시처럼 한시의 중간에 뱃노래가 나오는 것은 워낙 많아서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지만, 대체로 이러한 시의 의경意境은 한가로움과 고즈넉함, 때로는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수심愁心에 찬 경우가 많다. 위의 시에서도 역시 저녁의 뱃노래 소리에 시인의 마음은 갑자기 울적하고 쓸쓸하며 시름겨워진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인을 수심에 차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는 뱃노래 소리가 아닌 끝없이 이어지는 멀고 험한 여정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정승>
연일정씨홈페이지 www.yunilj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