圃隱集 第1券 [062]
旅順驛阻雨
海風吹雨冷○○ (해풍취우냉수수)
五月遼東也似秋 (오월요동야사추)
此去前程尙○○ (차거전정상초체)
那堪數日獨淹留 (나감수일독암류)
孤燈明滅分漁艇 (고등명멸분어정)
畵角悲凉起戌樓 (화각비량기수루)
縱向明朝看霽色 (종향명조간제색)
馬疲泥滑使人愁 (마피니활사인수)
여순역에서 비에 막혀
바닷바람 비를 뿌려 찬기운 솔솔
오월달 요동의 날씨 가을 같구나
여기부터 앞길이 아직도 먼데
어떻게 며칠 동안 홀로 머물까
외로운 등불 깜박이며 고깃배에 나뉘어 있고
처량한 뿔피리 소리 수루에서 일어나네
내일 아침 개인 경색 본다하여도
진흙탕 길에 말이 지칠까 근심되네
[해설]
위의 시는 산동으로 배를 타고 가기 위해 여순에 도착해 있는 장면이다.
제 2구에서 “오월달 요동의 날씨”라고 한 것을 보아 계절은 음력으로 5월인 여름임을 알 수 있다. 발해만渤海灣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닷바람은 연일 비를 뿌려댔다. 그래서 계절은 여름인데도 날씨는 가을과 같다. 3-4구는 앞날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다. “앞길이 아직도 먼데” 비에 막혀 가지 못하고 있다. 시인은 며칠 동안 홀로 머물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5-6구는 시인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 그리고 외로움이 경물 묘사를 통해 잘 그려져 있다. 고깃배에는 저녁의 어두움을 비추는 등불이 저마다 깜박이고 있고, 수루戍樓에서는 누군가 불어대는 뿔피리[화각畵角]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깜박이다[명멸明滅]”라는 말과 “처량한[비량悲凉]”이라는 수식어이다. 어두운 밤에 등불은 생명과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 등불의 빛이 계속해서 빛난다라고 해도 될 것을, 깜박인다라고 하고 있다. 깜박인다에 해당하는 본문의 시어는 “明滅”이다. 명멸은 말 그대로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는 의미이다. 왜 이같이 표현했을까? 이 말은 시인의 심적 상태를 암묵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어둠을 몰아내 주는 유일한 희망인 등불은 계속해서 켜있지 않고 그야말로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한다.
사행의 여정 또한 어느 날은 희망적이다가 또 어느 날은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이 시를 쓰고 있는 당시當時는 비에 막혀 기약없이 머물고 있기에 절망적이라 말 할 수 있다. 또한 6구의 뿔피리에 대한 수식어인 “처량한”이라는 말도 이 같은 시인의 절망적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경물묘사 속에 시인의 감정을 융합하는 수법은 전술한 바 ‘정경교융 情景交融’으로 당시의 전형적인 수법 가운데 하나이다. 한 번 걱정이 밀려드니 그 수심은 쉽게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욱 커져만 간다.
마지막 7-8구는 혹시 내일 아침 운이 좋게 날이 개인다 해도 비에 젖어버린 진흙탕 길을 갈 것이 걱정이 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시인의 심적 상태는 온갖 근심과 걱정, 수심과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 3구의 “먼데”, 5구의 “외로운 등불”, “깜박이며”, 6구의 “처량한”, 8구의 “진흙탕 길”, “근심되네”는 모두 이 같은 시인의 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시어들이다. 인용시는 암담하고 암울한 시인의 심리와 경물의 묘사를 통해 이같은 심리를 드러내는 수법이라는 면에서 당시적唐詩的 면모가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정승>
연일정씨홈페이지 www.yunilj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