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 말
고려기원, 1099년(2016년,병신) 10월 2일, 숭의전崇義殿 추향대제秋享大祭에 분헌관分獻官이 되어 숭의전에 참배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숭의전 포은선조 위패 앞에 분향과 제주祭酒를 올리고 재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른 아침 친지 몇 명과 용산 역전에 모여 기다리던 대절버스를 타고 연천으로 향했다. 숭의전은 조선시대에 전조前朝인 고려시대의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게 했던 사당이다. 숭의전의 제례는 오늘날까지 면면히 계승되어 현재는 개성왕씨종친회와 숭의전보존회의 주관으로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봉행하고 있다.
이곳은 원래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仰巖寺가 있었던 곳으로 1397년(태조6년)에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한 것이 시초이다. 숭의전에 대한 기초상식이나 아무런 준비 없이 추향대제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제례 복을 입는 방법부터 몰라 긴장되어,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다. 제례가 시작되기 직전에야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제례복을 입었다. 고려 전통 제례복이 옥으로 만들어진 장식으로 어깨가 눌려 무거움을 느꼈다.
숭의전에는 어느 왕이 배향되어 있고 배신청陪臣廳에는 누가 배향되어 있는지, 그저 포은선조처럼 충신들, 그중에도 최영 장군 같은 분 들이 모셔져 있겠지, 그리고 맨 마지막에 포은선조가 배향 되었지 않을까 하고 제례가 진행되는 동안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제례는 한 시간이상 계속되었고, 숭의전에 배향된 왕들에 대한 제례를 마치고 배신청으로 옮겨 분헌관들의 맨 끝에 서서 포은선조의 위패 앞으로 나아가 분향재배를 하였다.
제례가 끝나고 배향된 임금과 신하들의 위패를 자세히 살펴보니 나의 상식이 잘못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이런 궁벽한 장소에 고려의 종묘가 건립 되었을까? 그리고 30여명이 넘는 고려조의 역대 임금 가운데 왜 4명의 왕들만 배향 되었을까? 2017년 추향 대제에도 참배하였는데, 그때도 숭의전 안내소 앞에서 최영장군 후손들이 유인물을 나누어 주는데,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떤 가슴 아픈 한을 품고 살아오는 최 씨 문중이 전하는 메시지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최영장군 같은 충신이 왜 빠졌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이참에 숭의전에 참배한 인연으로 숭의전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보기로 결심하고 숭의전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 국회도서관에서 몇 편의 논문과 기록들을 찾아보았다. 이 글은 논문이 아니기에 최대한 알기 쉽게 쓰고자 한다.
▶ 왜 숭의전이 필요했을까?
왕조 또는 국가차원에서 왕조의 조상이나 애국선열에 대한 제사를 모시는 일은 민족의 전통이나, 왕조의 혈통, 역사의 계승 과 건국의 정통성이나 정당성의 반영 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왕조사회에서는 역대 시조나, 역대 군왕, 성현을 정하고 신위를 만들어 춘추春秋 또는 사시四時로 제사를 모셔왔다.
조선왕조에서는 고려왕조를 이어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아 나라를 세웠다고 생각하였다. 수명경시受命更始는 혁명의 정당성과 왕조 계승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조선건국 직후 고려왕조와 관련한 향사享祀와 그에 따른 사당을 정비하여 국가 제사 즉, 사전체계祀典體係 하에 넣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 초기, 고려조의 청산과 계승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려왕조에 대한 사당 설치와 제사의 편제를 어떻게 설정 할 것 인가의 문제가 대두 되었다.
예기禮記 제법祭法 편에서 나라를 세우고 다스림에 있어 조상제사를 모시는 일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 문화권의 역대 왕조에서는 거의 예기의 규정을 따르고 있다.
왕조사회에서 조상 혹은 임금 및 성현에 대한 제사시설은 각기 묘廟, 사祠, 전殿, 궁宮, 능陵, 묘墓라고 하였고, 길례吉禮 제사를 올릴 때에는 대상에 따라 천신天神과 관련해서는 사祀, 지지地祗(토지신)와 관련해서는 제祭, 인귀人鬼에 대하여서는 향享, 문선왕文宣王(공자)에 대해서는 석전釋奠으로 구분하였다.(예기제법편禮記祭法篇(천하유왕天下有王 분지건국分地建國 치도입읍置都立邑 설묘조단선이제지設廟쎦壇?而祭之 내위친소다소지수乃爲親疎多少之數). 조쎦는 조묘조(遠祖)를 합사 하는 사당이고 선?은 제사 터를 가리킨다.)
조선 건국 후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계승을 상징하는 고려 왕씨 사당의 설치와 제사를 모시는 것은 역성혁명의 정당성 확보와 고려의 청산이라는 명제 하에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이에 따라 고려 왕씨 제사의 정비와 법제화가 거론되었다. 그렇다면 제사시설은 어디에 얼마크기의 건물을 지을 것이며, 향사 대상은 어떤 임금을 모실 것인가, 그리고 어떤 신하를 배향 할 것 인가가 논의의 쟁점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숭의전 입지는 어느 곳?
숭의전 입지의 선정은 조선 왕조의 형식적 명분으로 풍수적 측면에서 찾았을 것으로 보이나 풍수적 측면에서 길지를 선정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왕건 태조가 궁예의 부하로 있었을 때 철원과 개경을 오가는 지점에 왕건 태조의 원찰인 앙암사仰庵寺가 있었고, 그 곳에서 쉬어가기도 하고 고개를 넘나들면서 물을 마셨다는 어수정御水井 이라는 샘이 있었던 곳으로 미루어 보아 태조 왕건과의 인연이 있었던 이곳으로 정하지 않았나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건국 당시 마전은 매우 궁벽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 이었을 것이다. 연산군 때 활약했던 정희량이 남긴 시에서도 외지고 궁벽했던 시골마을 이었음이 확인된다.(詩별첨) 개경에서 철원까지 180리, 임진강을 거슬러 배로 온종일 와야 90리, 중간지점인 바로 이곳 앙암사 사찰에서 쉬어가야만 했을 것이다.
태조 이성계로서도 전조를 예우한다는 명분과 개경주변의 전조에 대한 흔적을 지워버리고 태조 왕건의 위패를 궁벽한 곳에 유폐시킴으로 민심동요의 예방 등의 실리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임진강변 절벽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주소지로는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산10번지다.
▶ 고려태조묘 四位祀 설치
정도전이 작성한 태조 이성계의 즉위교서 17조항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조항이 각기 종묘사직의 제도와 고려 왕 씨 후손에 대한 처우와 제사를 모시는 일에 대한 것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천자는 칠묘七廟를 세우고 제후는 오묘五廟를 세우며, 왼쪽에는 종묘宗廟를 세우고, 오른쪽에는 사직社稷을 세우는 것이 고제古制이다. 고려 왕조에서는 소목昭穆의 순서와 당침堂寢의 제도가 법도에 합하지 아니하고, 또 성 밖에 있으며, 사직은 비록 오른쪽에 있으나 그 제도는 옛날의 것에 어긋남이 있으니, 예조에서는 상구祥究 하고 의논하여 제도를 삼게 할 것이다.(고제古制 : 하, 은 ,주 삼대 및 역대 왕조에서 행한 예제. 소목昭穆 : 종묘와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 왼편을 소昭, 오른편을 목穆, 시조의 신주를 가운데 모시고, 소에 2-4-6세, 목에 3-5-7세를 모신다)
2. 왕씨인 후손인 우瑀에게 기내畿內의 마전군麻田郡을 주고, 귀의군歸義君으로 봉하여 왕씨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그 나머지 자손들은 외방에서 편의에 따라 거주하게 하며, 그 처자와 동복은 그전과 같이 한 곳에 모여 살게 하고, 소재 관사에서 힘써 구휼하여 안정된 처소를 잃지 말게 할 것이다.(기내畿內는 서울 중심으로 500리 이내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봉건제도하의 천자天子의 직할지이다. 경기京畿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를 보면 종묘사직의 제도를 정비 하겠다는 것과, 고려 왕씨에 대한 제사와 봉사손을 결정하고 고려 왕실 사람들이 거주할 처소를 정하겠다는 의지가 나타나 있다. 따라서 태조 이성계 즉위 원년 8월 정사(8)에 “命移安前朝太祖于麻田郡명이안전조태조우마전군 以時致祭이시치제”라고 명하고 같은 해 10월 신유(13)에 전조의 종묘를 헐고 그 땅에 새로 태묘太廟를 짓토록 한 것으로 보아(태조실록권1) 먼저 고려 태조묘를 짓고, 고려 태조를 마전군에 옮겨 봉안하고 사시四時에 치제致祭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조전서禮曹典書 조박趙璞의 상서上書로 혜종, 현종, 충경왕(원종), 충렬왕, 다시 성종, 문종, 공민왕을 부제할 것을 청하여 태조가 윤허하였다. 그리고 전조 태조의 주상鑄像을 마전군으로 옮기도록 하였다.(태조실록 권1 태조 원년 8월 임술 12) 그러나 실제
태조묘 는 태조 이성계 6년에야 완성되었다.
처음에는 8위의 신주를 봉안 하였으나, 태종 13년 11월 예조에서 사전수조祀典數條를 진달 상서하여 단군, 기자와 함께 고려 태조에 대한 제사를 사전 편제중 중사中祀로 할 것을 요청하면서 태조 현종 공민왕의 신주를 그대로 두고 나머지 5실은 혁제革除하였다.(태종실록 권26)
그 후 태종16년 5월 갑인 23일에 원래대로 8위로 되돌렸다.(태종실 권31) 그러나 세종 7년 태조, 현종, 문종, 충경왕(원종)으로 사위四位의 신위가 정하여졌다.
이를 보면 조선 초기에 천자 7묘, 제후 5묘, 대부 3묘의 예기禮記제도를 따르지 않고 향사국왕 선정을, 8위→3위→8위→4위로 변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단 4위선정은 조선왕조의 입장에서 전조 와 같이 5위로 정할 수 없어 4위로 결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종 19년 3월 제도순심별감諸道巡審別監이 올린 계본에 의하면 “마전군의 고려시조이하 4위는 중사中祀이고, 사우祠宇에서 태조 신성대왕神聖大王은 남향이며,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은 동쪽에 있고, 문종대왕文宗大王은 서쪽에 있으며, 충경왕은 동쪽에 있다”고 한 것을 보면 고려 왕씨 제사는 중사이고, 4명의 국왕 신위 위치가 확정되었음을 알 수 있고, 명칭도 고려 태조묘 에서 사위사四位祠로 개칭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세종실록, 지리지地理志,경기 철원도호부鐵原都護府 마전현麻田縣).
▶ 향사대상 선정
고려의 역대 국왕은 공민왕까지 31대이다. 이들 국왕 가운데 어느 왕을 향사대상으로 선정 하였을까? 먼저 두 가지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첫째는 고려 시대의 5묘제 하에서 소목과 불천위를 반영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새로운 조선왕조의 입장에서 일정 기준을 설정하여 향사 대상을 정하였을 것이다.
고려 의종 대에 이르러 5묘廟 9실室 제制에 따라 태조ㆍ혜종ㆍ현종ㆍ문종ㆍ순종ㆍ선종ㆍ숙종ㆍ예종ㆍ인종으로 하는 2소昭2목穆의 신위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중에서 불천지위는 태조ㆍ혜종ㆍ현종이었다. 이는 공민왕 6년 7월 이제현의 상의上議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려사 권61, 지15 예3 길례대사吉禮大祀 제릉諸陵 공민왕 6년 8월).
앞에서 언급했던 예기 제법 편에 향사를 하는 다섯 가지 명분(기준)이 있다. 이것은 향사 대상 국왕과 배향 공신을 정하는 기준이 되었을 것이다. 이를 소개 하면 다음과 같다.
1. 생전에 백성에게 良法을 베푼 자를 제사한다.
(法施於民則祀之 법시어민칙사지)
2. 죽음을 무릅쓰고 국사에 힘쓴 자를 제사한다.
(以死勤事則祀之 이사근사칙사지)
3. 노고를 아끼지 않고 정국 하였으면 제사한다.
(以勞定國則祀之 이로정국칙사지)
4. 큰 재난을 능히 막고, 많이 농토를 넓히면 제사한다.
(能禦大쾙則祀之 능어대치칙사지)
5. 큰 환난을 예방하고 물리 쳤으면 제사한다.
(能꼕大患則祀之 능한대환칙사지)
위의 다섯 가지 명분을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백성에게 공덕이 있는 국왕을 선정한 것이니, 고려 태묘의 불천지위不遷之位를 중심으로 공功과 덕德의 명분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초 고려국왕 향사와 관련한 명분을 살펴보면,
○왕건 태조는 불천지위로 당연한 대상이고,
? 혜종, 현종, 충경왕(원종), 충렬왕 : 공업功業과 현덕顯德, 구유공어민俱有功於民.
? 성종 : 경모중화景慕中華, 이흥문물以興文物, 민수기사民受其賜.
? 문종 : 근신수성謹愼守成, 제세승평?世昇平, 민안기생 民安其生.
? 공민왕 : 재섬홍적再殲紅賊, 부흥삼한復興三韓, 선사상국善事上國, 이안일방以安一邦, 개유공동방皆有功東方.
이상 8위는
? 태조 이성계 원년 8월경신(11), 신유(12), 정묘(27)에, 논의된 내용이고,
? 정종 원년 4월 정묘(27), 명입묘어마전현命立廟於麻田縣, 제전조태조급혜祭前朝太祖及惠, 성成, 현顯, 문文, 충경忠敬, 충렬忠烈, 공민恭愍 7왕王, 이칠왕개유공덕야以七王皆有功德也의 논의의 초점은 공업功業과 현덕顯德 즉 공덕의 명분名分을 확실히 하고 있다.
? 태종 13년 11월 경진(4) 근안당례악지謹按唐禮樂志 고선제왕古先帝王 병렬중사竝列中祀 국조선농선잠문선왕國朝先農先蠶文宣王 열어중사列於中祀 단군기자전조태조檀君箕子前朝太祖 의승중사宜陞中祀 -종묘봉사宗廟奉祀 지어오실止於五室 내이전조지주乃以前朝之主 사지팔위祀至八位 사미합례似未合禮 태조이하칠위내太祖以下七位內 현종극축료적顯宗克逐遼賊 이제민해以除民害 공민왕능사대명恭愍王能事大明 이안민생以安民生 유공어동방의당병사有功於東方義當幷祀 기여오위其餘五位 허령혁제許令革除
? 태종16년 5월 갑인(23) 예조상상정제사예禮曹上詳定諸祀序例, 감전조8위減前朝八位, 지사태조只祀太祖 현종顯宗 공민왕삼위恭愍王三位 상왈上曰 혜종惠宗 성종成宗 문종文宗 충경왕忠敬王 충렬왕구유공덕어민忠烈王俱有功德於民 종원전소재병사지從元典所載 竝祀之
태종13년의 기록에서 전조 태조향사를 중사로 할 것과 현종과 공민왕을 향사의 대상으로 삼고, 나머지 5위는 혁제하자 하면서 현종에 대하여는 거란 격퇴를, 공민왕에 대해서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들고 있다. 혁제의 근거로 삼은 것은 宗廟奉祀가 五室에 그치므로 태조묘 향사가 이를 넘어 8위에 이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보고, 古制의 제후 五廟를 준행 하면서도 조선의 종묘봉사를 넘을 수 없다는 조선의 입장을 반영 한 것이 분명하다.
? 세종 7년 9월 계축(17) 교지敎旨 전조태조前朝太祖 현종顯宗 문종文宗 충경왕忠敬王(원종元宗) 유공덕어민有功德於民 재지사전잉구치제載之祀典仍舊致祭 종정부從政府 육조六曹 춘추관지의春秋館之議 이개정야而改定也.
? 문종 2년 3월 무술(5) 의정부계議政府啓 왕씨봉사王氏奉祀 원륙전팔위元六典八位 속6전4위續六典四位 령종하전令從何典 상왈上曰 종속전從續典.
상기 세종 7년 9월 기록 이후 4위四位 향사는 고정되었고, 이는 경국대전에도 기록되어 있다.(경국대전, 예전, 봉심조 : 역대시조급고려태조이하4위歷代始祖及高麗太祖以下四位〔현종, 문종, 공민왕〕능침소재수령매년성시차금전시陵寢所在守令每年省視且禁田柴).
현종의 선정 명분은 극축료적克逐遼賊 이제민해以除民害 즉 거란이 침입했을 때 격퇴하여 백성들을 보호한 공功을, 문종은 근신수성謹愼守城, 제세승평?世昇平, 민안기생民安其生, 말씀이나 행동이 조심스럽고, 외침으로 부터 국방을 튼튼히 하여 백성들의 삶을 편안 하게 한공功을 들고 있다. 그리고 충경왕은 공통적인 백성들에 공덕이 있다는 명분을 들고 있다.
왕조사회에서 혈통의 계승과 공덕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는데 혜종의 경우 적장자 이지만 왕규王規의 난으로 내치에 실패한 흠이 있고, 성종은 내치는 성공적으로 치적이 있지만 거란의 침략을 완전히 물리치지 못하여 협상을 통해 극복했고, 충렬왕은 아들인 충선왕에게 폐위됐다가 복위된 문제가 있었다. 공민왕의 경우 신돈 등용으로 국정이 문란하였고, 측근에 의해 시해된 왕으로 혁제의 대상이 됐다고 보는 견해가 일리가 있어 보인다.
▶ 숭의전 명칭과 16공신 배향
이상에서 태조 즉위 교서 17개 항목 중 첫 번째와 둘째항목에서 명하였던 고려조, 태조묘와 4위사四位祠가 결정 되어온 과정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태조묘를 계승한 사위사의 경우 그 규모나 신묘神廟로서의 격에 맞지 않게 운영되어 왔다. 따라서 사우祠宇에 대한 수리와 제도 정비에 대한 의논이 나오게 된다. 건국 초 왕씨를 마전麻田의 앙암사仰菴寺에서 제사지냈는데, 사우가 좁고, 누추하여 신묘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기사년己巳年에 관찰사로 하여금 고쳐 건축하도록 하였으나,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못하여 빗물이 새고 무너져, 선대를 존숭하는 뜻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예조에 명하여 기지基地를 살펴 정하고 묘사를 고쳐 세우게 하소서.(문종실록 권12 문종2년 3월 신해 18)
이글은 문종 2년 3월 의정부에서 왕씨지후봉사조건王氏之後奉祀條件에 대해 의논한 사항이다. 위 글에서 사위사란 별도의 사우가 없이 앙암사에서 제사지냈으니 좁고 누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기사년 즉 세종 31년 개수改修토록 지시했으나 문종 2년에 이르도록 이행하지 못한 듯하다. 그런데 이런 논의가 나오기 직전 왕씨 제사를 모실 계사자繼嗣者를 찾는 문제가 생기고 같은 달 무술일(5)에 의정부에서 원육전의 8위론과 속육전의 4위론의 선택여부를 물었으며, 문종은 이에 대해 4위를 택하였다.
문종2년 3월 충청도 관찰사가 공주에서 고려 현종의 후손 왕우지王牛知를 찾았다. 왕씨지후봉사조건王氏之後奉祀條件이 12조항이었는데, 주요내용은 묘사를 고쳐 세울 것, 제품祭品을 고쳐 상정詳定할 것, 자성전물졪盛奠物자을 국고에서 지변할 것, 배향신配享臣을 택하고 왕씨사묘王氏祠廟를 칭전稱殿할 것, 선대 사우祠宇가 소재한 고을이므로 마전현麻田縣을 군郡으로 승격할 것, 수복守僕의 수를 늘릴 것, 왕우지의 자손이 제사를 받들게 할 것, 왕우지에게 비옥한 토지와 농우農牛, 농기農器, 농량農糧, 모전모직某殿某職 등을 주어 부유하게 할 것, 거주할 집을 주고 잡인의 출입 교제 통제할 것.(문종실록 권12문종 2년 3월 신해18)
상기내용 중 왕씨의 사묘를 모전某殿이라고만 되어 있어 아직까지 숭의전의 명칭은 확정되지 못하고 단종 즉위년(1452) 7월에 왕우지 즉 왕순례王循禮를 숭의전 부사로 삼았다. 따라서 숭의전 체제가 정립되었다. 제사는 중사中祀로 춘추春秋 치제致祭가 시행되었다.
경국대전에서 사使(종3품), 수守(종4품), 영令(종5품), 감監(종6품)등 각 한사람씩 두었다.
문종 2년 3월 왕씨지후봉사 조건에서 “고려제왕각유배향지신高麗諸王各有配享之臣 걸택유공어생민자乞擇有功於生民者 종사從祀”라 했고, 단종 원년 5월 전조 왕씨 봉사조건에서도
“전조지군前朝之君 각유배향기중대유공어민자各有配享其中大有功於民者 영춘추관상고계문종사令春秋館詳考啓聞從祀”에서 문종의 의도가 배향공신 종사결정이었다. 따라서 배향공신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배향공신을 선택하려면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고려 제왕에게는 각기 배향공신이 있었
다. 그중에서 백성들에게 공이 있는 자를 선정해야 하는 문제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공민왕까지 31대에 걸쳐 모두 69명의 체협배향공신애씳配享功臣이 있
다. 고려 역대 국왕중 배향공신이 없는 헌종, 충숙왕, 충목왕 대이며, 위화도 회군이후 우
왕과 창왕은 폐가입진론廢假立眞論에 따라 폐위 및 賜死사사되었고 공양왕은 선양禪讓하면
서 역성혁명의 대상이 되어 종묘에 입묘되지 못하여 배향공신이 있을 수 없었다.
시대 묘정廟庭과 체협배향공신
배향공신 선정기준은 4위 향사에 맞추면, 태조 대 6명, 현종 대 4명, 문종 대 4인, 원종
대 2인 등 모두 16명이 된다. 그러나 숫자로는 동일하지만 실제 단종 즉위 원년 12월에 선
정된 16공신을 보면 각왕 별 체협배향공신이 아닌 특유공어생민特有功於生民의 명분에 맞
추어 이루어졌다. 배향공신 종사 16위는 다음과 같다. (표2)에서 69명의 체협배향공신외
에 김방경, 안우, 김득배, 이방실, 정몽주 등 숭의전 배향공신 16공신 중 왕대에 없는 5명
을 합하여 모두 74명이다.
숭의전 봉사시 16위
숭의전 봉사시 종사 16위에 나타난 공신들의 공적은 태조 대 5인의 공신은 고려 건국의
공신으로 태조 묘정에 배향된 인물이다. 서희는 거란을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한 공로가
있고, 성종 묘정에 배향된 공신이다.
강감찬 역시 거란을 물리쳐 나라를 평안하게 한 공적이 있었다. 윤관은 여진정벌의 공
이 있고, 김부식은 묘청의 난을 다스린 공적, 조충·김취려는 거란유종奚丹遺種(패망한 대요수국大遼收國의 거란족 유민을 가리킨다)을 물리치고 몽고와 형제관계를 맺은 공으로, 김방경은 임연 정권과 삼별초의 난을 다스리고, 일본정벌 즉 동정원수東征元帥에 오른 면이 있다. 안우ㆍ김득배ㆍ이방실은 홍건적을 섬멸하였다. 정몽주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와 왜구 문제를 해결하고, 가묘를 세우고, 예제를 확립하였으며, 오부학당과 외방향교를 설치하여 교육과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의창을 설치하여 빈민을 구제하고, 수참을 설치하여 조운을 편리하게 하였다. 그리고 고려왕조에 절의를 지켰다.
(표2) 고려시대 묘정廟庭과 체협배향공신 명단에 보이지 않는 인물은 김방경ㆍ안우ㆍ김
득배ㆍ이방실ㆍ정몽주이고, 왕대별 배향과 맞지 않는 인물은 서희(성종실), 윤관(예종실), 김부식(인종실), 조충ㆍ김취려(고종실)이다 이는 성종ㆍ예종ㆍ인종ㆍ고종의 묘실이 없어, 왕대별 배향의 명분은 달랐다.
이상을 정리하면
? 태조실?현종실?문종실 - 원종실의 체협공신 16위와 숭의전 배향 공신종사 16위가 맞지 않고,
? 체협공신에 없는 배향공신이 5위(김방경,안우,김득배,이방실,정몽주)가 있다. 그리고,
? 4위의 국왕 묘정 배향 공신과 맞지 않는 공신이 5위(서희-윤관-김부식-조충-김취려)가 있다.
▶ 관련 시
숭의전을 찾은 정희량(1469~?)의 시와 1789년(정조13)마전군수 한문홍이 숭의전 수
리를 마치고 지은 시 두 편
題麻田郡館 마전군 객사에서
寂寞麻田郡 적막마전군 마전군 쓸쓸한데
何年館宇開 하년관우개 어느 때 건물을 지었나
頹垣靑遍草 퇴원청편초 무너진 담에 풀이 무성하고.
壞壁綠生苔 괴벽록생태 부서진 담벼락에 푸른 이끼 끼었네
地到烏江盡 지도오강진 땅은 오강에서 다하고
山從紺岳來 산종감악래 산은 감악으로 오네
一區煙雨足 일구연우족 한 고장 안개 비 넉넉하니
麥浪翠千堆 맥랑취천퇴 보리밭 고랑마다 푸른 물결 일렁이누나
蕭條輿地誌 소조여지지 여지지도 보잘 것이 없고
寥落鐵城詩 요락철성시 철원에 대한 시도 쓸쓸하다
挾路桑麻長 협로상마장 오솔길엔 뽕과 삼이 자라고
當門楊柳垂 당문양류수 문 앞엔 버드나무 늘어졌네
峯巒橫作障 봉만횡작장 산봉우리와 산줄기는 가로 막혔고
藤葛擁爲籬 등갈옹위리 칠과 등줄기는 울타리를 에워쌓네
太守無公事 태수무공사 태수는 할 일이 없어,
琴軒晝日遲 금헌주일지 동헌의 거문고 소리 대낮에도 한가하다
위 시는 정희량이 마전군의 한 객관에 머물면서 남긴 시詩다. 적막강산의 마전군을 찾은 정희량은 숭의전을 틀림없이 찾았을 것이고 그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임진강 절벽위에 세워진 고려 종묘를 경치가 수려하고 한적한 곳에 전조 정신적 지주였던 배향한 왕들과 16위의 공신들을 잘 모시고 있구나하고 생각 했을까? 아니면 전조 고려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우기 위해 유폐시켰구나 생각했을까? 당시 정희량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정희량 : 예종1년생, 본관은 해주, 연경延慶의 아들. 연산군 때 문관, 자는 순부淳夫, 호는 허암虛庵, 연산군1년(1497) 문과급제, 소장을 올린게 문제가 되어, 1498(연산군4), 무오사화때 의주에 귀향, 김해에 이배된 뒤 1497년 사면되어 예문관 대교에 복직, 모친상을 당해 고양에서 수묘守墓하다 산책 나간 후 김포 강변에 상복과 신발을 벗어 놓고 돌아오지 않았다. 성질이 강건하고, 문장과 시에 능하였으며, 음양학에 밝았고 영달에 뜻이 없었다.(연산군일기, 해동명신록) 이천년李千年이란 이름으로 변성명하고 산사를 유람하다, 정주군 심연동深淵洞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춘 기인奇人이었다 한다.)
重作崇義殿 중작숭의전
麗組祠宮四百秋 려궁사궁사백추 숭의전을 지은 지가 4백년이 되었는데,
誰敎木石更新修 수교목석경신수 누구로 하여 목석으로 수리하게 하는가?
江山豈識興亡恨 강산기식흥망한 강산이 어찌 흥망의 한을 알리요,
依舊蠶頭出碧流 의구잠두출벽유 의구한 잠두봉만 푸른 물위에 떠있구나.
往歲傷心滿月秋 왕세상심만월추 지난세월 가을 보름달에 마음 슬퍼하였거늘
如今爲郡廟宮修 여금위군묘궁수 지금 이 고을 군수 되어 묘궁을 수리하네.
聖祖更乞麗牲石 성조경걸려생석 조선은 고려위해 다시 고쳐 제사올리니
留與澄波萬古流 유여징파만고유 임진강 푸른 물결과 더불어 길이길이 이어지리라.
이 시는 1789년(정조13) 마전군수 한문홍이 숭의전 수리를 마치고 옛 고려조의 영화와 쇠
락속에 담긴 회한과 무상을 읊은 시이다. 지금도 숭의전에서 내려 다 보이는 잠두봉 절벽
에 새겨져 있다. 아마도 숭의전은 문종대에 앙암사 절에서 별도의 사우가 지어진 이후
1605년(선조38년), 1727년(영조3년), 1789년(정조13년), 1868년(고종5년), 1908년(순종2년) 등 크게 5회에 걸처 개수改修와 중수重修를 반복하였다. 그러나 6ㆍ25전쟁 중에 소실되어 1971년 숭의전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그 터를 사적으로 지정하고, 1972년부터 재건하여 오늘의 건물이 있게 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숭의전崇義殿, 이안청移安廳, 배신청陪臣廳, 전사청典祀廳, 앙암재仰巖齋의 건물이 있다. ▶ 사진
고려숭의전
